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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문과 함께하는 감성 쇼핑 여행기, (3) 영국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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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까요!

-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中

런던

# 2.

우리가 영국에 도착한 건 23일 오후였다. 12월 23일부터 26일 오전까지 영국 런던에 머무니, 크리스마스를 온전히 런던에서 보내는 셈이다. 아, '유럽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얼마나 로맨틱한가! 영국으로 향하는 유로스타에서 나는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트리가 빛나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줄곧 상상했다.

그런데 웬걸, 이 예상은 절반 가량 빗나갔다. 한국의 경우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리 곳곳이 사람과 불빛으로 일렁거리고, 가족들의 단란한 모습과 연인들의 애틋한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가게가 밤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유럽은 다르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란 '가족끼리 집에서 보내는 것'이라는 인식이 크다. 런던에 체류하는 24, 25일은 곳곳의 가게가 문을 일찍 닫거나 열지 않고, 인적도 드물 것이라는 소리다! 아, 그럼 난 런던에서 뭐 해야 하지? 사람들이 일렁이는 풍경을 구경하려 했는데.

런던아이

# 3.

예상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괜찮아,
여행 전 세웠던 계획이 100% 고스란히 실행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날씨가 궂을 수도 있고, 늦잠을 잘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지출을 할 수도 있다.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내 상상력을 뛰어넘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거잖아?

# 4.

24일과 25일에는 영국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도 문을 닫는다. 23일 오후, 부랴부랴 미술관을 찾았다. 발길이 향한 곳은 약 2,300 점의 유럽 회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는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갤러리의 작품들은 13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사이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필자는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여행지를 방문할 때마다 줄곧 미술관을 찾았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과 평온한 자세, 섬세한 붓터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포근함을 안겨 주었다.

# 5.

13세기부터 20세기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다니며 감상할 수 있다는 기분은 묘하다. 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걸음 걸음마다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으니, 세기의 거장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미술관 초기의 작품들이 주로 신을 묘사했다면, 후기 작품들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헤르민 길리아의 초상'과 같이 점점 일상과 인간 중심적으로 흘러갔다. 전자는 마치 꿈과 이상을, 후자는 현실을 그려내는 듯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런던 내셔널 갤러리
런던 내셔널 갤러리

# 6.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은 고흐의 '해바라기' 앞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연신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화려하게 조명받는 오늘날과 달리, 실제 고흐의 삶은 무척이나 불우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후세에 자신의 작품이 이토록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현재의 삶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 칭송받는 삶은 과연 어떠할까. 멋진 것일까, 외로운 것일까, 잔인하고 비참한 것일까.

고흐 해바라기

# 7.

내셔널 갤러리를 나와 트라팔가 광장을 거니니 산타클로스, 피카츄, 배트맨 등 다양한 캐릭터 복장을 한 거리의 예술가들이 눈에 띄었다. 세계적인 명절(크리스마스)에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추운 거리에 기꺼이 나온 그들이야말로 진짜 산타클로스일 것이리라.

런던 트라팔가 광장

# 8.

런던을 가면 빼놓을 수 없는 쇼핑 리스트는 바로 '포트넘 앤 메이슨'이다. 포트넘 앤 메이슨은 1707년 포트넘과 H.메이슨이 창립한 영국의 식료품 회사 및 홍차 브랜드다. 영국 왕실과 귀족들에게 홍차와 식료품을 납품하면서 명성을 얻었고,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홍차 브랜드가 되었다. 그 유명세만큼 현지인과 관광객들에게 늘 사랑받는 곳이다.

포트넘 앤 메이슨은 한국의 '명동'이라 불리는 피카델리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포트넘 앤 메이슨은 그 명성답게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따끈한 홍차와 달달한 초콜릿의 기운이 지친 몸에 활력을 넣어주었다. 관광객들은 물론, 필자 역시 고급스럽고 향기로운 모습에 취해 매장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사람이 많은 것을 제외하면 가게만 둘러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관광하는 매력이 있었다.

포트넘 앤 메이슨
포트넘 앤 메이슨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지인들을 위한 선물, 그리고 셀러문을 통해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홍차와 초콜릿 몇 점을 샀다. 크리스마스 기간에만 판매하는 '초콜릿이 들어있는 오르골'도 샀다. 초콜릿 통을 오르골로 만든 것으로, 민트빛 회전목마 모양의 원통을 돌리니 아기자기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차 한잔이 매력있는 이유는 고유한 향기와 따뜻함으로 마음을 풀어준다는 점, 그리고 소중한 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리라. 한국에 도착하면 여기서 구매한 홍차 한 잔에 초콜릿을 곁들이며 이번 유럽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문득 한국에 남아있는 '내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셀러문

# 9.

쇼핑을 여행하는 앱 '셀러문'의 매력은 여행지에서 발견한 좋은 상품을 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행을 사랑하고 내 감정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공유'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과연 셀러문의 유저들은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내가 느낀 포근함에 얼마나 공감할까?

셀러문에 홍차와 초콜릿이 들어있는 오르골을 올리자 순식간에 판매가 종료됐다. 아마 셀러문에도 소중한 사람들과 홍차와 초콜릿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문득 직접 여행을 하지 못하더라도 '내 사람들'을 생각하며 물품을 구매한 이들에게 깊은 공감대와 따뜻함을 느꼈다. 여행을 마치면 물품을 안전하게 배송해서 이 즐거움이 배가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 10.

영국에서 또 하나 쇼핑할 만한 것은 '박물관 상품'이다. 런던에는 대영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과학 박물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들이 많다. 이들 박물관에 자리한 샵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의 품질이 기대 이상으로 좋다. 영국 및 해당 박물관을 상징하는 노트, 액세서리, 에코백, 우산, 화장품 등 매우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특히 대영 박물관의 상품이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대영 박물관에서는 로제타스톤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상품을 찾아볼 수 있었다. 꽃향기와 과일 향기를 담은 향초도 가격대는 꽤 높지만,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구매하는 상품 중 하나다. 셀러문에서도 향초를 피우며 행복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리라, 생각하면서 향초 하나를 집어들었다.

런던 대영 박물관

# 11.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런던의 명소, '빅벤'이 있었다. 빅벤은 영국 국회의사당의 북쪽 끝에 있는 대형 탑시계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팬'이 웬디 남매와 하늘을 날아오르던 바로 그 장면에 등장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피터팬이 살던 꿈 같은 그곳, 네버랜드는 어디에 있을까. 소설에서 네버랜드는 은하수 근처에 있으며, 항상 해가 뜨는 시간에 머물러 있어 하늘과 우주와 맞닿아 있고, 어른들의 시야 바깥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피터팬은 어른이 되기 싫어했다. 그 마음은 서른을 목전에 둔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는 피터팬과 같이 하늘을 날아오를 수도, 네버랜드를 여행할 수도 없으니, 그저 어린 마음으로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문득 왜 세상은 어린아이처럼 살아가기에 불가능할 만큼 어려운 것인지, 네버랜드처럼 환상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런던 빅벤

# 12.

크리스마스 이브가 밝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럽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상당수의 가게들이 문을 닫은 채 'Sale'이라는 문구만 붙여놓고 있었다. 이는 26일부터 시작되는 '박싱데이(Boxing day)'를 준비하는 것이다. 박싱데이란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을 가리키는 말로, 과거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서는 이날을 휴일로 삼고 하인들에게 선물을 했다. 오늘날에는 파격적인 할인가에 제품을 판매하는 쇼핑 시즌을 일컫는다. 만약 쇼핑을 계획하고 있다면, 12월 26일은 절호의 기회다.

크리스마스에는 거리의 마켓도 문을 일찍 닫는다. 코번트 가든에 들렀지만 거리의 우스꽝스러운 작은 공연만 하나 진행될 뿐, 판매하는 물품은 없었다. 게으름을 피워 느지막이 나왔더니 더 그런 것 같았다. 이런 날에 유일하게 활기를 볼 수 있는 곳은 피카델리 거리뿐이다. 하지만 피카델리 거리 역시 몇몇 가게를 제외하면 불빛이 적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루종일 거리를 배회한 뒤 밤에는 세인트 폴 대성당을 방문하기로 했다. 24일 밤에는 으레 그렇듯이 성당에서 미사를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군중들은 마치 연예인 콘서트를 기다리는 팬처럼, 아이폰 출시를 기다리는 구매자처럼, 초조하게 미사 시간을 기다렸다.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 13.

미사 시간은 밤 11시 30분. 밤 11시 15분이 되자 비로소 입장을 시작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아쉽게도 성당 내부를 담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아색으로 세워진 기둥과 금색으로 장식된 높은 돔, 정교한 장식이 장관을 이뤘다. 성당 내부 곳곳이 예술품으로 뭇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았다. 성당 내부에 그려진 벽화와 천장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은은한 촛불은 화려하면서도 마음을 평온케 했다.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미사 분위기는 조용하고 엄숙했지만 부드러웠다. 웅장한 풍금 소리가 흘렀고, 주보에 따라 차례차례 미사가 이루어졌다. 가장 많이 들었던 문구는 'The lord be with you(주님께서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였다. 참석자들은 'And Also with you'라고 따라 읊조렸다. 모든 이들이 한 마음이 되어 내일의 축복을 기원하고 행복을 바라는 모습이 참 따뜻했다.

12시가 넘어가는 시각,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가장 절친했던,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친구에게 '생일 축하해'라고. 이제는 세상을 떠났기에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것이 어색하지만, 살아 생전 함께해줘서 참 기쁘고 고마웠다고.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 14.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귀에 익숙한 크리스마스 노랫말 중 일부다. 하지만 글쎄, 나는 이 가사를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데, 1년 동안 단 한 번도 울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일까? 싶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한 번쯤은 가슴 아프게 울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착한 사람 아닐까?

만약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우는 아이에게도 선물을 줬을 것 같다. 세상이 이토록 아프지 않다면, 울지 않는 씩씩한 아이가 착한 아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15.

미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 이어'라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요즘처럼 팍팍한 시대에 낯선 이에게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가. 생경한 장면이었지만, 추운 날씨에도 가슴 따뜻한 벅참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밤이었다.

해피 뉴 이어.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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