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권명관 기자] 기술은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한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황에 맞춰 활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개인 혹은 기업의 역량이 달라진다. 이 역량은 다가올 위기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데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최신 흐름과 정보를 얻는 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경기콘텐츠진흥원(이하 경콘진)이 스타트업을 위한 성장 노하우를 전달하고자 다양한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 중 창업 및 전문가를 초청해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테크(TEC – Tech, Experience, Content) 콘서트'는 기술·창업 분야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을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테크 콘서트는 이름 그대로 기술과 콘텐츠에 대한 강연으로, 지난 7월 2일부터 세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이미 지난 2년간 총 24회에 걸친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1,520여 명이 청중으로 참여한 바 있다.
테크 콘서트 시즌3는 7월부터 11월까지 고양, 광교, 시흥(서부), 의정부(북부), 부천 등 총 5개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지역별 특화된 창업 정보를 담아 진행한다. 강연 주제는 지역별 특색과 대상을 살렸다. 고양은 '뉴미디어 및 모바일', 광교는 'VR·AR(가상·증강현실)', 시흥은 '사물인터넷(IoT)', 부천은 '하드웨어', 의정부는 '디자인' 등 다양한 주제로 열린다.
< 테크콘서트 시즌3 김영만 원장 강연 모습 >
테크콘서트 시즌3 아홉번째 강사로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의 김영만 원장이 '공감과 소통, 그리고 추억의 종이접기'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참고로 경콘진은 행사장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창업 정보와 창업 확산에 기여하기 위해 테크콘서트 시즌3를 네이버 '비즈니스 판'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지금을, 현재를 어려워하는 코딱지들을 만나다
1980~90년대 유년기를 보낸 세대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영맨',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원장이다. 혹자는 김 원장을 어린이들의 원조 대통령이라고도 소개한다. 매일 아침 종이접기를 가르쳤던 그를 추억하는 젊은이는, 그에게서 내 유년시절,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22일 서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2030 젊은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강연에 나섰다. 평일 저녁 다소 늦은 7시지만, 그의 말마따나 이제 다 커서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 코딱지들'은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이제는 아들, 딸을 키우는 어른이 되어 버린 코딱지들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 TV유치원 당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원장의 모습 >
그는 "처음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서 연락을 왔을 때, 출연을 거절했었다. 예능국에서 섭외 요청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사실 무슨 프로인지도 몰랐다. 2030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방송이라며, 백종원, 김구라 등 유명인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긴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도망다녔다"라고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서 그는 "마리텔 처음 미팅 때 만난 젊은 작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선생님을 섭외하지 못하면 피디님이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에, 그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번만 출연하겠다는 생각으로 마리텔에 나갔다"라며, "마리텔은 2시간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생방송도 처음이고, 실시간으로 시청자들과 채팅창을 통해 소통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인터넷 용어도 모르고,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글자를 읽지도 못한 채 마리텔 방송을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김영만 원장, 출처: MBC 방송 캡처 >
당시 그는 눈물을 표현한 'ㅠㅠ'라는 표현조차도 몰랐다. 아니, 채팅창이라는 존재 자체가 낯설었다. 잘 안보인다는 김 원장 말에 당시 피디가 다른 출연자들이 사용하는 모니터보다 더 큰 모니터를 가져다 놨지만, 도통 읽을 수가 없었다. 이에 그저 2시간 동안 준비한 종이접기를 보여주고 끝낼 생각만 했다. 어차피 1번 출연이 끝이라고 생각했었고.
그 때 백종원, 김구라 등 다른 방송채널에 있던 시청자들이 종이접기 아저씨가 마리텔에 출연했다는 생각으로 몰려들었다. 방송 시작 10분만에 서버가 멈췄고, 작가로부터 'ㅠㅠ'가 무엇인지 들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그를 보고, 그의 모습만을 보고 눈물로 반기더라는 작가의 설명. '선생님 어디 있었냐'며, '왜 이제 다시 나타난거냐'며 울고 있는 청년들의 인사에, 울컥했다. 마음 속으로 펑펑 울었다. 채팅창 볼 정신도 없었고, 준비한 내용만 잘 마무리하기 위해 종이접기에 매달렸다. 그게 그가 쭉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는 첫 마리텔 방송을 끝냈다.
그는 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많이 울었단다. 수많은 청년들이, 얼마나 지금 사는게 힘들었으면, 그 어린 시절 종이접기하던 아저씨를 보고 그렇게 울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 테크콘서트 시즌3 김영만 원장 강연 모습 >
마리텔 첫 생방송 이후 다음날, 난리가 났다. 그때 다짐했다. 지금을 어려워하는 청년들을 위해, 과거를 추억하는 우리 코딱지들을 만나겠다고. 방송에서 "어려워요? 어려우면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세요"라고 건넨 농담에, "이젠 내가 엄마에요...ㅠㅠ"라고 눈물로 반기던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 때부터 김 원장은 청년들을 위한 강연이라면, 몇 명이 모이는 자리든 출연료에 상관없이 섭외에 응했다. 그리고 항상 '친구들 고마워요'라는 인사부터 건넨단다. 행복했던, 즐거웠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찾는 청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스스로 '청년들과 공감대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어른'이라며, '청년과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베풀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이 서른둘에 종이 접던 김 원장, "기회는 찾아옵니다"
김 원장은 "누구에게나 기회는 찾아온다.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가 무엇인지 스스로 잘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이 32살에 종이접기로 교육할 수 있겠다며 색종이 들고 출근했다"라며, "주변에서 참 많이 창피를 줬다. 하지만, 종이접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연구하고, 커리큘럼을 완성하며 준비했다"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어서 그는 "유치원에 전화해서 선생님들에게 종이접기 교육법을 설명하고, 직접 찾아가기를 반복했다. 당시 국내에는 딱지, 종이학, 거북이 정도의 종이접기만 보편화되었을 뿐, 이를 교육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없었다"라며, "그렇게 직접 발로 뛰기 시작한지 5년만에 한 초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미술교사로 일해줄 수 없냐라고. 그렇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며, 교육적으로 더 강화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 코딱지들에게 늘 감사하다는 김영만 원장 >
이게 그의 첫번째 기회였다. 유치원을 돌아다니며 관심 없는 선생님들을 설득한지 5년만에, 한 초등학교가 던진 기회를 그가 잡았던 것. 두번째 기회는 'TV유치원 하나둘셋'이다. 당시 나이 39살.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던 그에게 소문을 듣고 방송에 나와줄 수 없냐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시작된 방송 속 '종이접기 아저씨'로 6년을 지냈고, EBS에서 다시 9년을 방송했다.
많이 어려웠다. 15년 가까이, 매일, 새로운 종이접기 아이템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떨어져 가는 아이템과 가중되는 압박감에 우울증도 겪었다. 1년 전에 했던 아이템을 다시 꺼내면 귀신같이 알아보는 아이들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다시 찾아온 세번째 기회가 마리텔이다. 그는 마리텔에 대해 "우리 코딱지들이 나를 다시 불러줬다"라고 말한다.
그가 강조한 것은 기회다. 네번째 기회는 다시 찾아올까, 찾아온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라고 읊조린 그는 "작은 기회는 언제 어느때 찾아올지 모른다. 하루에 두세번씩 찾아오지만,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라며, "기회를 잡아야 한다. 청년들은 기회를 잡아야 하고, 우리 어른들은 지친 청년들을 위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청년에게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김 원장은 마지막으로, 지친 청년들에게 어른들이 먼저 다가서야 한다고 부탁했다. 그는 "해외에는 경로석, 노약자석이 없다. 지친 청년들이 버스, 지하철에 앉고 싶지만, 경로 우대 앞에서 작아진다. 노약자석이 비어 있어도, 앉지를 못한다. 개인적으로 노약자석을 정말 싫어한다"라며, "혼밥, 혼술, 혼자 지내는 청년들이 많다. 안타깝다. 밥을 혼자 먹지 않도록 사회가 만들어줘야 한다. 가족들이 모여서 밥을 먹기 때문에 식구라고 하는 말이 있다. 서로 소통하는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어른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설명을 이었다.
< 강연이 끝난 뒤, 바람개비를 접어 날리고 있는 참석자들 >
이어서 그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넘어 5포, 7포… 이제는 N포 세대라는 말도 나온다. 왜 이렇게 포기하는 것만 늘어가는지 모르겠다. 이게 의지 없고, 쉽게 지치는 청년 탓일까? 아니다"라며, "이끌어주지 못한 어른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 같이 밥 먹고,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소통하기 위해서 먼저 다가서고 베풀어야 하는 것이 어른이고, 사회의 책임이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을 끝낸 김 원장은 현장을 찾은 미취학 여자아이와 어머니,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 형제, 회사에서 퇴근하고 온 듯한 정장차림의 청년, 대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온 듯한 청년, 손자와 함께 찾은 할머니 등과 함께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500원짜리 색종이와 가위, 풀로 바람개비, 비행기, 요술꽃 등이 탄생했다.
< 커플티를 맞춰 입은 엄마와 딸, 그리고 김영만 원장 >
현장은 금세 왁자지껄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무대 맨 뒤에서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날린 비행기가 무대 앞으로 날아오자, 10살 정도로 보이는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주워 돌려줬다. 엄마는 자신을 꼭 닮은 어린 딸과 함께 커플 옷을 입고 열심히 색종이를 접었고, 피곤해 보이던 정장차림의 두 청년은 망쳐버린 종이접기를 들고 허탈하게 웃었다.
기자가 본 강연장의 참가자들은, 다 같이 종이접기를 즐기는 똑같은 코딱지였다. 나이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김 원장이 바라는 공감과 소통의 자리를 살짝 엿본 느낌이다.
< 종이접기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코딱지였다 >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