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 시장을 보다 보면 간혹 가격이 100만원을 넘는 초고성능 제품이 종종 나온다. 게임을 원활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게이머라면 누구나 있겠지만 사실 저런 초고가 제품이 아닌 20~30만원대 그래픽카드를 쓰더라도 시중에 나온 99% 게임은 무리 없이 구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저런 비싼 그래픽카드가 쓸모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조사 입장에선 자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매니아 입장에선 혹은 몇 년 후에나 대중화될 미래의 성능을 미리 맛보기 위해 이런 제품을 산다. 이것이 바로 플래그십(기함) 제품의 숙명이다.
한동안 그래픽카드 시장에선 엔비디아의 '지포스 타이탄' 시리즈가 플래그십 그래픽카드의 대명사처럼 군림해왔다. 물론 AMD의 플래그십인 라데온 R9 290 시리즈가 가격대성능비는 훨씬 좋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가격을 고려하지 않은 절대적 성능을 중시하는 최상위 시장에선 그래도 엔비디아를 한 수 더 쳐주는 인상이 강했다.
그리고 최근 엔비디아는 기존의 타이탄을 능가하는 '타이탄Z'를 발표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AMD 역시 이에 뒤질 세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그래픽카드'를 표방하는 신제품을 발표했다. 미국 현지 시간 기준 4월 8일에 출시된 '라데온 R9 295X2'가 그 주인공이다.
2개의 GPU 가진 라데온 R9 295X2, 모티브는 ‘히드라’ 몬스터
라데온 R9 295X2의 출시에 며칠 앞서 AMD코리아는 기자단을 초청, 데본 넥커틱 AMD 데스크탑 부문 담당자의 입을 통해 라데온 R9 295X2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라데온 R9 295X2는 2개의 고성능 GPU를 함께 탑재한 듀얼 GPU 그래픽카드로, '히드라 프로젝트'라는 코드명으로 개발되었다. 히드라는 그리스 로마에 나오는 강력한 몬스터 중 하나로, 2개의 머리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AMD의 설명에 따르면, 라데온 R9 295X2는 철저하게 극소수의 PC매니아들을 겨냥한 제품이라며,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고장의 위험까지 가진 위험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넥커틱 씨는 자신 역시 오래 전부터 강력한 PC를 지향하는 매니아 중 한 명 이었다고 강조하며, 최근 출시되는 PC 부품들은 너무 자동화되고 쓰기 쉬워진 탓에 오히려 예전과 같은 희열을 느낄 수 없으나 라데온 R9 295X2는 이런 흐름에 정면에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이탄Z보다 고성능, 수냉식 쿨러 기본 탑재로 발열도 잡았다
이전에도 2개의 GPU를 달아 고성능을 추구한 플래그십급 그래픽카드가 출시된 바 있으나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발열이나 전력 소모를 억제하기 위해 단일 GPU 그래픽카드에 비해 클럭(동작속도)를 낮워 탑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날 소개된 라데온 R9 295X2 2개의 GPU를 탑재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클럭은 높인 것이 특징이라며,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달성했다고 AMD는 밝혔다.
라데온 R9 295X2는 124억 개의 트랜지스터와 5,632개의 스트림프로세서, 그리고 8GB의 512비트 GDDR5 메모리를 탑재하고 있다. 연산 능력은 11.5테라플롭스로, 경쟁 제품인 타이탄Z의 8테라플롭스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AMD 관계자는 강조했다.
이런 고성능을 뒷받침하기 위한 발열 대책도 충실히 마련했다고 AMD는 밝혔다. 라데온 R9 295X2는 공랭식 냉각 장치를 가진 일반 그래픽카드와 달리 수랭식 냉각 장치(Asetek 제조)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또한 전압조정기와 같은 제어 기능도 기본적으로 제공, 냉각성능과 정숙성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실제로도 경쟁 제품에 비해 3데시벨 정도 더 조용하다고 한다.
매니아들의 성향에 부응하기 위해 제품의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우선 제품 전체에 플라스틱이 아닌 금속 재질을 도입해 패키지를 구성했다. 그래픽카드 외부에는 붉은색 라데온 로고와 LED 조명을 삽입, 부하가 걸리는 작업을 할 수록 더욱 격렬하게 빛나며 매니아들을 만족시킬 것이라고 AMD는 밝혔다.
4K 아이피니티 환경에서 원활한 게임 구동 가능, 가격은 1,499달러
AMD가 밝힌 바에 따르면 라데온 R9 295X2는 3DMARK에서 1만 6,000점을 넘는 점수를 기록했으며, 기존 풀HD 보다 4배의 높은 정밀도를 갖춘 4K(울트라HD)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기 위한 그래픽카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단순히 4K 표시가 가능할 뿐 아니라, 3개의 4K 모니터로 거대한 파노라마 화면을 구성하는 아이피니티 환경도 지원하므로, 이를 통해 총 2,400만 화소에 달하는 압도적인 고화질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렇게 막강한 성능을 자랑하는 라데온 R9 295X2지만 이 물건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다. 일단 그래픽카드 자체만으로 500W에 달하는 전력을 소모하므로 이를 제대로 구동하려면 최소 1000W 정도의 파워서플라이(전원공급장치)를 갖춘 PC가 필요하다. 참고로 이런 파워서플라이는 30~40만원 정도가 보통이다.
그리고 카드 자체의 크기가 제법 큰 데다 수랭식 냉각 장치까지 달려있으므로 상당한 내부 공간을 가진 PC 케이스가 필수다. 라데온 R9 295X2의 제품 가격 역시 미화 기준 1,499 달러(약 160만 원)로, 타이탄Z의 절반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부담 없이 살 수준은 아니다. 어디 까지나 최고의 성능만을 추구하는 상위 0.1%의 매니아만이 이 물건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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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