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김태우 기자] SK브로드밴드 이인찬 대표가 3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1년 간 3,2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콘텐츠 제작사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펀드는 SKB와 CJ헬로비전 합병 법인이 출범되는 동시에 진행된다.
3,200억 원의 펀드 조성은 SKB가 1,000억 원, CJ헬로비전이 500억 원을 출자해 자체적으로 1,500억 원을 조성하고, 나머지 1,700억 원은 모태 펀드를 기본으로 한 매칭 펀드를 활용할 방침이다. 모태 펀드는 펀드에 재투자하는 펀드로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정부주도로 설립된 한국벤처투자가 운영 중인 펀드를 말한다. 매칭 펀드는 여러 기업이 공동출자한 펀드다. 올해 모태 펀드 계획으로 문화부와 미래부를 중심으로 4,000억 원 규모의 펀드가 결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1,700억 원 조달은 충분할 것으로 SKB는 내다보고 있다.
3,200억 원 중에서 1,000억 원은 스타트업에 투자되고, 2,200억 원이 콘텐츠에 쓰인다.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일반 영상 콘텐츠 제작 1,200억 원, MCN, VR등 융복합 콘텐츠 제작에 600억 원,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글로벌 콘텐츠 펀드에 400억 원 등이 쓰일 예정이다.
국내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4~5억 원가량으로 16부작이면 60~80억 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된다. 3,200억 원은 드라마만 40편 이상 만들 수 있는 금액이다. 국내 1년 드라마 타이틀은 100개 정도로 우리나라 전체 드라마 절반가량을 제작할 수 있는 규모다.
3,200억 원 투자 후 이익금과 회수금 등을 이용해 1,800억 원은 재투자할 계획이다. 향후 5년 동안 총 5,000억 원 운용이 목적이라고 SK브로드밴드는 밝히고 있다.
▲ SK브로드밴드 이인찬 대표가 투자 규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가 이런 큰 규모의 콘텐츠 펀드 계획을 시행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다. SKB와 CJ헬로비젼의 합병. 합병이 없다면 이런 투자는 힘들다는 태도다. 여기에 대해 이인찬 대표는 "지금까지 유료 방송 시장 경쟁 구조는 1위를 제외하면 소규모로 유지되어 규모의 경제를 가지지 못 했다"며 "플랫폼의 규모가 작아 투자가 힘들고, 저가 할인 경쟁을 일삼아 왔으며, 방송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치 창출이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즉 규모가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투자 효용성이 증대되고, 차별화된 콘텐츠 경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즉 플랫폼이 일정 이상의 규모를 가져야 투자 효용성이 높아져, 플랫폼-콘텐츠 간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합병법인이 출범되어야 시장 점유율은 27~29% 정도로 700만 고객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이 고객을 바탕으로 투자한 콘텐츠에 대해 매출에서 의미 있는 숫자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투자에 대한 회수가 잘 이루어져야 또 다른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플랫폼 규모가 커야 투자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으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합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합병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에 대해 이인찬 대표는 "투자 계획이 지연되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투자금이 조성되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한다. 현재의 VOD는 지상파와 영화의 다시보기 성격이 짙다. VOD 전용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포맷과 스토리텔링을 도입하고, 사전 제작과 전편 동시 개봉 등 새로운 방식의 실험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콘텐츠 다양성도 확보해, 다큐멘터리, 문화, 교양, 예술 등의 콘텐츠에도 투자해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SK브로드밴드 측은 밝혔다.
이번 투자에 대해 전체 규모는 3,200억 원이지만, SKB가 직접 밝힌 투자 금액은 1,500억 원으로 직접 투자가 아닌 펀드 형식이다. KT와 LG유플러스는 이에 대해 콘텐츠 펀드 투자 내역은 기존 SKB에서도 진행해온 내용으로 새로운 것이 없다며, SKB-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과의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고 견해를 밝혔다.
양사는 "SKB는 콘텐츠 생태계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미디어-콘텐츠 산업간 배타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자사 미디어플랫폼에 콘텐츠를 수급하는 업체에만 혜택이 국한되어 콘텐츠 산업의 미디어 자본 예속을 급격히 심화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펀드 조성이 콘텐츠 생태계 활성화와는 무관하다고 보고 있는 것.
콘텐츠 산업의 미디어 자본 예속의 사례로 양사는 '뽀로로'를 언급했다. SKB가 프로그램 제작단계부터 투자한 콘텐츠로 타 플랫폼에는 상당 기간 제공하지 않았었다.
한국방송협회 또한 SK브로드밴드 투자에 대해 정부의 인허가를 받기 위한 '면피용 약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투자 계획의 외형은 커졌으나 실제 자체 투자액은 오히려 줄었으며, 공익성 담보를 위한 어떤 조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SKT는 IPTV 출범 당시 5년간 5,000억 원 이상을 콘텐츠에 투자한다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
글 / IT동아 김태우(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