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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문과 함께하는 감성 쇼핑 여행기, (1)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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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레드 퀸의 손을 잡고 숲 속을 달린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처럼 느낀다.

"이상해요. 제가 있던 세상에서는 이렇게 빨리 뛰면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왜 주위 풍경이 그대로이죠?"

"거기는 느려 터진 세상인가 보군. 여기서는 온 힘을 다해 뛰어야 겨우 제자리에 머물 수 있어. 만약 더 앞으로 나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는 빨리 뛰어야 한다"

이러한 '레드 퀸 효과(Red Queen Effect)'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세상에서는 단지 제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달려야 하며, 경쟁에서 앞서려면 어느 누구보다 훨씬 더 빨리 달려야 한다.

레드 퀸 효과가 지배하는 이 세상은 마치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닮았다. 세상은 자꾸자꾸 나락으로 빠져들어가고,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친다. 그러나 어지간히 빨리 달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제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뒤처지지 않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토록 이상하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앨리스'일지도 모른다.

아,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해

거울나라에 사는 앨리스는
두 배로 빨리 뛰는 대신 거울나라 세상을 잠시 떠나기로 했다.

두 배로 빨리 뛰기만 한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잊어버리게 될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치여 자신만의 꿈,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기 자신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거울나라를 내려와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바로 '여행'.

# 1.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렇다면 여행은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을까?

흔히 여행은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다고도 한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 2.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세상을 좀 더 알게 되고 철이 들까요? 글쎄, 그건 나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나이를 먹는 세상은 거울나라 같아요. 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대책 없고 철딱서니 없는 것 같죠?"

스물 아홉 살, 나의 이야기다. 올 한해는 '몸도 마음도 아팠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건강 문제로 자주 아팠고,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퇴사를 했다. 서른 살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말이다. 한창 열심히 일해야 할 시기에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룬 게 많고 잃은 게 많은 한 해였어. 커리어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결실을 이루었고, 하고 싶었던 일이 분명해지기도 했지.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부족한 점도 많이 느꼈어. 그리고 팀원들을 잃었지. 아무래도 좀 씁쓸해…."

나와 여행을 함께한 J의 답변이었다. 나는 J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서른 일곱 살의 커리어는 이런 것일까, 라고 막연하게 짐작하다가, 부러워하기도 했다가, 이내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느꼈다. 올해를 어떻게 보냈냐는 질문에 J는 '일 얘기, 회사 얘기'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일 얘기만 하다가 잠들더라) 실제로도 J는 매일같이 일에 치여 살았다.

그렇다, 우리 두 사람에게는 '여행'이 필요했다.

공항

# 3.

두 사람은 여행 전날까지 여유가 없었다. 나는 출발 4시간 전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흔히 여행 전날에 드는 불안하고 심란한 마음에 잠은 자지 않았다.

동행하는 J에게 질문했다. "언니는 어제 뭐 했어요?"

J는 말했다. "그냥 밤새도록 일했지.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서 정신 없었어. 며칠 전 딸아이가 아파서 곤욕을 치뤘는데, 그 다음에는 긴장이 풀렸는지 감기에 걸렸어. 완전 죽겠네…. (콜록콜록)"

결국 여행 당일, J는 깜박 잊고 노트북을 집에 놓고 왔다.
"아, 그러고 보니 노트북 충전기에 꽂아두고 그대로 놓고 왔어"
"노트북 없으면 어떡해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 J가 말했다. "잠깐, 먼저 들어가 있어"

J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노트북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려는 걸까? 면세점에서 지인들을 위한 쇼핑을 하는 동안에도 J는 나타나지 않았다. J는 기내 탑승을 하면서 만날 수 있었다. J는 말했다.

"나 노트북 샀어"
"네?"
"면세점에서 샀어"

유럽 여행을 떠났지만 J는 일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노트북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고(!).

노트북

# 4.

비행기에 탑승한 두 여자는 지쳤는지 말이 없었다. 나는 줄곧 잠을 자다가 생각에 빠지길 반복했고, J는 노트북을 세팅한 후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고 다시 영화를 감상하길 반복했다. 감기에 걸린 J는 연신 콜록거렸다.

우리의 여행지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다. 첫 행선지는 프랑스의 파리. 그 다음은 영국의 런던, 이탈리아의 베니스, 피렌체, 로마 등으로 떠나기로 했다.

느닷없이 낯선 땅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니, 지인이 하나의 앱을 추천해 줬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재미있는 앱이었다. 이름하여 '셀러문'. 해외 여행을 하며 발견한 독특한 상품을 구입하고, 앱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쇼핑 공유 서비스라고 한다. 여행을 가면 쇼핑은 빠질 수 없는 요소, 귀가 솔깃했다.

해외 여행을 가면 주변 사람의 부탁을 받아 물건을 저렴하게 사거나, 해당 여행지에서만 판매하는 독특한 물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여행자가 가치생산자가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물품을 타인에게 제안한다면 어떨까? 여행지에서 추억이 담긴 물품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할 수 있고, 실제로 판매하면서 나만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

셀러문

졸음이 가득 담긴 눈을 껌벅이면서, 이러한 여행의 여정과 목표를 생각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아니아니, 꼭 잘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 여행이 값어치가 있어야 하잖아. 가치 있는 여행이란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거울나라를 떠난 앨리스는 이제 앨리스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난 과연 내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까?
내 길을 알고 있을까?

# 5.

20일, 드디어 도착한 파리. 프랑스 파리에는 단 이틀을 머무른다. 둘째날에는 몽 생 미셸을 투어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은 첫날 오후밖에 없었다. 마침 샹젤리제 거리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 샹젤리제로 떠났다.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마켓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마켓

콩코르드 광장을 시작으로 개선문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는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다. (오, 샹젤리제~ 하는 멜로디의 그 샹젤리제 맞다)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이 곳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문전성시를 이뤘다. 흰색 천으로 이어진 마켓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부비고 있는 모습이 죽 이어져 있었다. 거리에는 간간히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펴졌고,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로 웅성거렸다. 색색깔의 화려한 조명들은 반짝임을 뽐내며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마켓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마켓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마켓

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은 각양각색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물부터 액세서리, 캔들, 목도리와 장갑, 시계, 장미꽃 모양으로 다듬은 비누, 마트로시카 인형, 가죽 다이어리 등 다양한 상품을 팔고 있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에펠탑 모양 액세서리, 노트 등도 많았다. 반짝반짝 불빛에 취해 마켓에 진열된 물품들을 살펴보다가, 기념품 하나 사 볼까 하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무엇을 사야할지 모르겠더라.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마켓

# 6.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물론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매력적인 물건들이 가득한 곳에서 무엇을 고를지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취향을 모른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언젠가부터 취미 생활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까?

거리를 걷다가 디즈니스토어를 발견하고 '내가 디즈니를 좋아했던 것 같아', 라고 생각했지만 샵에서 단 하나도 사지 못했다. 세포라를 발견하고 '내가 화장품을 좋아했었지', 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쇼핑을 했지만 남들이 좋다고 했던 것, 유명했던 것을 구입한 것에 불과했다.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의 기준 없이 내 취향대로 오롯이 내 것을 고를 수 있을까?

프랑스 세포라
프랑스 세포라

# 7.

흔히 큐레이팅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큐레이팅이란, 수많은 정보와 상품들 중 전문가가 각각의 사용자에게 적합한 것을 골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큐레이팅은 복잡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굉장히 편리한 서비스임은 분명하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속 뉴스부터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 꾸미는 것에 이르기까지 큐레이팅 서비스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에 익숙해지면서 정작 내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힘은 잃어버리게 된 것 같다. 시쳇말로 '결정장애'라는 단어도 있다. 정작 나는 이 말을 꺼림칙하게 생각했으면서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결정하지 못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들을 만나 점심 메뉴를 결정할 때도 제대로 결정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콩코르드 광장

# 8.

나는 내가 자아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내 자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가 큰 코 다친 적도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도 알고 보면 주변 사람의 결정을 따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 역시 나의 자아 중 일부이겠지만, 스스로를 생각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것은 확실했다.

문득 마음이 괴로워져서 자아를 비틀고 꼬고 발버둥쳤다. 우스운 일이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 걸까.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더라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인데. 혹시,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일까?

개선문

# 9.

그러던 와중 지나쳤던 가게 한 군데가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펜던트 시계 목걸이를 파는 곳. 그 가게가 가장 유럽풍의 액세서리를 파는 곳 같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면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그 가게 위치가 어디였지? 약 30여분 간 지나쳐 온 거리를 다시 되짚어 돌아갔다. 다양한 액세서리 중 프랑스의 상징과도 같은 에펠탑 그림이 그려진 펜던트가 눈에 들어왔다. 상단 버튼을 누르면 뚜껑이 열리며 시계가 나타난다. 이 시계를 보면 프랑스에서 보냈던 시간을 보다 애틋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펜던트

# 10.

해외 여행을 온 사람들은 어떻게 쇼핑을 할까? 문득 다른 사람들은 이 목걸이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지인이 추천해줬던 셀러문 앱에 목걸이를 판매하겠다고 올려보았다. 만약 판매된다면 내 감성이나 안목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셈이니 재미있을 것 같았고, 판매되지 않는다면 내가 간직하면 그만이니 좋을 듯했다.

셀러문

놀랍게도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왔다. 구매 의사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내가 고른 물건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고 있다니, 신기하고 즐거웠다. 내가 다녀온 여행지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좋아하는 물건을 고르고, 그것을 공유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비록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자그마한 위로가 되었다.

셀러문

# 11.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경험,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경험을 쌓는 것도 내 자신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 이번 여행은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고르고 공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몰랐던 여행,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외로웠던 여행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하나 찾게 되자, 왠지 아지트를 발견한 듯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지에서 마음을 끄는 물품을 하나씩 찾다보면,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지에서는 과연 어떤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에펠탑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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