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이란 아동 청소년 또는 아동 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성행위, 유사성행위, 성적 수치감을 일으키는 행위, 자위행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 비디오물, 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 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 -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 2조 5호
아동 청소년 음란물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이에 대한 처벌의 근거가 되는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제 2조 5호'가 도마에 올랐다. 쟁점은 네 가지다. ▲'아동 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을 뜻한다)'의 정의가 너무 애매모호하고 ▲정의가 애매모호함에 따라 경찰, 검찰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너무 많으며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의 경우 실제 아동 청소년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의 수위가 너무 강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업계는 아청법 제 2조 5호가 만화가들의 창작욕구를 꺾는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청법 제 2조 5호의 문제를 논하기 위한 두 번째 토론회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최민희 의원 주관으로 12일 열렸다. 최 의원은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어떻게 규제해야할지 논하는 것이 이번 토론회의 주제"라며, "1,000만 명에 이르는 잠재적 범죄자 양산 우려가 있는 현행 아청법 제 2조 5호를 반드시 폐지 또는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간사로 나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오픈넷 이사 겸임)는 "현행 아청법 제 2조 5호의 가장 큰 문제는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 유통, 소지를 단순 음란물 규제가 아닌 아동 성범죄로 처벌하는 것"이라며, "실제 강간을 하더라도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는 것이 전부지만, 가상 청소년 음란물 제작, 유통, 소지는 아동 청소년 강간과 동일하게 취급돼 5년 이상의 징역과 전자발찌(신상공개 포함) 20년 그리고 취업규제 10년에 처해질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실제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 유통, 소지는 피해 아동 청소년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만큼 아청법으로 규제받아 마땅하지만,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은 피해 아동 청소년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죄의 경중이 전혀 다르다"며, 둘을 같은 죄로 취급하는 현행 아청법 제 2조 5호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에는 음란물 '유통'만을 규제했지만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은 '제작, 유통, 소지'를 모두 규제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현행 아청법 제 2조 5호의 해결책으로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아청법 규제에서 제외하고, 징역 최대 3년, 벌금 최대 3,000만 원 수준으로 처벌 강도를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아청법이 개정된 후 연간 100여 건이던 아동 성범죄가 2,224건으로 22배 증가했다"며, "이는 실제 아동 성범죄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아청법 제 2조 5호를 근거로 경찰이 대상자들을 잡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박 교수는 일반 음란물 단속에 무관심하던 경찰이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 유통, 소지가 아동 성범죄에 포함됨에 따라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단속을 강화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동 성범죄의 경우 얼마 전까지 경찰 인사고과에서 특진가산 점수 대상에 포함됐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훈 교수는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은 실제 피해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도하게 처벌받고 있다"며,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명백히 '실존'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만 아청법으로 처벌 가능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실제 아동 청소년을 모델로 한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만 아청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청법 제 2조 5호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된 피고인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는 "아청법이라는 새로운 형법이 추가됨에 따라 무고한 사람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며, "2011년 아청법 개정 이후 아청법 적발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며 법을 너무 확대적용한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양 변호사는 "일본 성인 교복 음란물이 아청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로 단속 대상이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바뀐 것 같다"며,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은 특유의 어려보이는 그림체 때문에 아동 청소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청법 제 2조 5호의 적용을 받게 되는 등 애매모호한 점이 많다"고 밝혔다.
또, "아청법 제 2조 5호로 기소된 피고인 대다수가 청소년 또는 20대"라며, "이들 대다수가 제작, 유통, 소지한 음란물이 아청법 위반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양 변호사는 "현재 음란물의 가장 보편적인 유통경로인 토렌트의 경우 내려받음과 동시에 음란물을 타인에게 배포(유통)하게 된다"며, "이를 통해 음란물을 내려받은 당사자가 음란물을 배포할 의사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경찰, 검찰이 임의로 추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양 변호사의 지적은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 유통과 단순 소지에 따른 처벌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제작, 유통은 소지보다 더 강도 높게 처벌받는다.
만화 업계의 대변인으로 나온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는 "모호한 규정으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며,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의 판단 기준인 '진짜 아동과 유사한 그림'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오히려 궁금하다"고 밝혔다. 서 칼럼니스트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인 만화의 등장인물의 나이를 무슨 수로 알 수 있겠나"라며, "보호해야할 대상인 실제 아동 청소년을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 아청법의 진정한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 검찰의 그날 판단에 따라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 아청법 입건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는 법이 대중문화가들에게 알아서 기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청법 제 2조 5호가 창작의 자유를 해치고 있다는 의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향선 위원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실제 아동 청소년 음란물이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제 기준은 실제 아동 청소년 음란물과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판단하는 기준은 Realistic(현실적인)"이라며,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 등장하는 아동 청소년(바트, 리사, 매기)을 대상으로 가상 음란물을 제작한 것을 미국 대법원이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으로 처벌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판단하는 기준을 '실제 아동 청소년과 얼마나 유사하게 묘사했는지(그림체)' 대신 '접하는 대상이 해당 캐릭터가 아동 청소년이라고 인지할 수 있었는지 여부(인지 가능성)'에 둬야한다는 뜻.
아동 청소년 포르노 추방을 목표로 활동하는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모니터링 해본 결과 실제 아동 청소년 음란물보다 가학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 잦았다"며, "만화, 애니메이션은 특유의 과장된 표현 때문에 오히려 실제 음란물보다 자극적인 경우도 많았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수많은 실제 아동 청소년 성적 피해 사례를 분석해본 결과 많은 아동 청소년 성범죄자들이 실제/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하고 있었고, 실제/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관람한 후 범행을 저지른 사례도 종종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어 "실제/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이 아동 청소년 성범죄와 상관관계(주의: 인과관계 아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언론을 장식한 충격적인 아동 성범죄자의 집(PC 포함)에서 예외 없이 아동 음란물이 다량으로 발견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해외에서 제작되는 실제/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의 경우 국내에서 추적이 어려운 만큼 음란물에 출연하는 대상이 아동 청소년이 아님을 입증하는 책임(입증책임)을 경찰, 검찰이 아닌 피의자에게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입증책임이란 '형사재판에서 죄가 있는지 없는지 입증하는 것'으로 몇 가지 특별법을 제외하면 경찰, 검찰에게 그 책임이 있다. 입증책임이 있는 쪽이 불리하다는 것이 통례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만에 하나라도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실제뿐만 아니라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도 아청법에 그 근거를 두고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현행 아청법은 어디까지가 아동 청소년 음란물인지 애매모호한 것이 사실"이라며 관련 규정을 명확히 규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고의수 여성청소년성보호과장은 먼저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이 실제 아동 청소년에게 피해를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운을 뗐다.
고 과장은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힌 연구사례는 현재 전혀 없다"며, "하지만 지난 2010년 형사정책 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 예로 고 과장은 세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아동 성범죄자 A의 경우 PC에서 아동 청소년 음란물 70여 편을, 초등학생 성폭행 살인범 B의 경우 50여 편을 발견했다. 특히 아동 성범죄자 C의 경우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 3편을 시청한 후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이병귀 기획수사팀장은 "진성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단속해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가성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음란물인지 애매모호한 것)의 경우 잡음이 많다"며, "때문에 음란물의 범위를 최대한 좁게 해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명백한 아동 청소년 음란물인 경우에만 경찰이 입건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경찰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단속을 강화했다는 박 교수의 지적에 이 팀장은 "아동 성범죄자로부터 아동 청소년 음란물이 발견됐는데 왜 단속을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됐다"며, "이에 작년 9월 특별 단속팀을 구성해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추적했고, 때문에 단속 건수가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현재 아동 청소년 음란물의 대다수가 아동 청소년이 자신의 몸을 노출한 영상(소위 몸캠)인 경우가 대다수"라며, "아청법 보호 대상인 아동 청소년이 아청법으로 처벌해야 하는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 배포자가 되는 게 현실"이라고 현행 아청법의 맹점을 꼬집었다. (토론이 끝난 후 이 팀장은 '몸캠' 때문에 해당 청소년을 입건하지는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을 마무리하며 최 의원은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명백히 '실존하는' 아동 청소년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아청법으로 처벌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진성 음란물과 가성 음란물을 구분하는 기준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아동 성범죄자가 아동 청소년 음란물을 보는 것(상관관계)이지, 아동 청소년 음란물 때문에 아동 성범죄자가 되는 것(인과관계)은 아니다"며,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유명 시사만화작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박재동 화백은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 상당수가 일본에서 제작돼서 넘어오고 있지만, 정작 성범죄율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더 낮은 것이 현실"이라며, "많은 학생이 음란물을 보고 성장했지만, 그들이 성범죄자가 되지는 않았다"고 꼬집으며 법과 현실의 괴리를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의 전체 흐름을 풀어보자면, 토론자 모두 현행 아청법에 문제가 있다고 동의했다. 가상 아동 청소년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가상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 유통, 소지를 단순 음란물 유통으로 처벌할지 아니면 아청법으로 처벌할지 의견이 갈렸다. 또, 아청법 개정을 찬성하는 입장에선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이 나오기 전에 국회에서 먼저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청법을 개선해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선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이 나온 후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청법은 지난 5월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가 위헌제청을 해놓은 상태다. 위헌제청이란 법원(판사)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해당 법률이 헌법에 반할 소지가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하는 제도다. 또, 지난 3월에는 토론자 가운데 한 명인 박경신 교수가 아청법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피의자를 대리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