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강형석 기자]
"우리는 페라리 포뮬러원(F1) 레이싱 팀과의 스폰서십을 통해 기술에 대한 열정과 환상적인 제품들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올해에도 페라리와 협력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고성능이라는 공통 주제 아래 두 기업이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존 테일러(John Talyor) AMD 최고 마케팅 책임자(CMO)는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위치한 페라리 박물관에서 자사와 페라리(스쿠데리아 페라리)와의 협업을 축하하며 이같이 언급했다. AMD와 페라리는 약 15년 가량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이번 후원 계약은 더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뮬러원 레이싱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는 1929년부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엔초 페라리(Enzo Ferrari)에 의해 설립되었고, 현재는 포뮬러원 못지 않게 슈퍼카 브랜드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경주용 차량의 기술을 자사 양산 차량에 적극 반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제조사이기도 하다.
2003년부터 시작된 AMD와 페라리의 관계
AMD와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2003년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에이서도 함께 후원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차량과 레이서의 복장에 기업 로고를 씌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페라리라는 슈퍼카 및 포뮬러원 브랜드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려고 했다. AMD가 직접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이를 최종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에이서의 몫이었다.
대표적인 제품이 에이서 페라리 원(Ferrari One)이다. 페라리 원은 AMD 모바일 프로세서인 애슬론 네오(Athlon Neo) 프로세서에 기반한 넷북이었다. 뛰어난 휴대성과 함께 외형을 마치 페라리 슈퍼카처럼 붉은색 도장과 중앙에 페라리를 상징하는 뱃지(스쿠데토 페라리)를 달아 주목을 받았다.
스마트폰도 선보였었다. 역시 에이서를 통해 선보인 리퀴드 E 페라리 스페셜 에디션(Liquid E Ferrari Special Edition)이 그것. 후면에는 페라리를 상징하는 뱃지와 붉은색 본체로 일체감을 줬고, 전면에는 3.5인치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조작하도록 만들었다. AMD 기반 제품은 아니었지만 페라리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이었다. 물론 다른 스마트폰들도 출시된 바 있다.
이후에는 AMD와 페라리와의 접점을 찾기 어렵다. 2010년 이후 뚜렷한 모바일 프로세서 라인업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이 후속 제품을 보기 어렵게 된 계기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AMD는 꾸준히 페라리와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는 고성능을 추구하기 위해 계속 정진하는 포뮬러원의 정신과 AMD의 노력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부끄럽지만 페라리를 경험해 봤습니다
지난 7월 27일, 이탈리아 모데나에 위치한 아우토드로모 디 모데나(Autodromo di Modena)에서 페라리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이는 AMD의 페라리 후원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중 하나였는데, 기자는 노란색 458 이탈리아를 직접 시승할 수 있었다. 해당 차량은 경주 코스를 달릴 수 있도록 개조가 이뤄진 상태였다.
주행을 하기 전에 약 30분 가량 교육을 받았다. 차량을 다루는 법부터 코스와 코너를 공략하는 방법, 기타 안전수칙 등을 전문가(인스트럭터)에게 들을 수 있었다. 여러 차량을 타봤지만 솔직히 페라리를 시승해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시승은 3바퀴를 돌면 마무리 되는 식이다.
전문가는 차량의 가속 페달을 살살 밟아 줄 것을 주문했다. 출시가 제법 된 차량이지만 기본형이라도 565 마력(토크 55kg.m)을 뿜어내는 고성능 차량이다. 게다가 이 차량은 더 빨리 달리기 위해 개조가 이뤄진 차량. 더 강력한 힘을 내기 때문에 쉽게 다루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숙련된 조교(가 아닌 전문가)들이 차량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작업이 이뤄졌다. 한 대도 아니고 6대의 458 이탈리아가 굉음을 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때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에 있는 불법 개조된 차들의 배기음은 배기음도 아니라는 것을. 아무튼, 보닛에 수줍게 붙어 있는 AMD 로고를 그것도 페라리 차량에서 보게 되다니 오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실제 페라리 포뮬러원에 후원하는 AMD는 자사 로고가 차량의 앞과 함께 트럭과 선수들 옷에 노출된다. 나름대로 잘 보이는 위치에 부착되기에 시선을 끌기에는 좋아 보인다.
예열과 타이어를 적당히 태우고 나서는 기자에게 시승 기회가 주어졌다. 혼자 타면 엄청난 몸 값의 차량을 황천길로 보낼 수도 있으니 기자 옆에는 해당 차량을 운전했던 전문가가 동석해 조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내 차가 아니기에 어떻게 보면 잘 된 일이리라. 두부 배달을 생업으로 일본 고갯길을 정복하는 주인공의 삶을 그린 모 만화의 주인공처럼 운전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좁은 운전석에 큼직한 기자의 몸을 욱여 넣으니 실내는 의외로 편안했다. 중앙에는 정말 포뮬러원 차량의 스티어링 휠을 보는 듯한 물건이 놓여 있었고, 계기반도 잘 꾸며져 있었다. 이제 정말 "페라리에 몸을 실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기어를 1단에 놓고 서서히 가속 페달을 밟으며 피트인 구역을 빠져나간 다음, 화끈하게 속도를 높이니 몸이 시트에 묻히며 빠르게 가속하는 차량과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고 싶지 않다. 정말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 글을 보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게 AMD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 자리에서 언급하기 어렵다는 점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그렇게 페라리 458 이탈리아와의 만남은 단 3바퀴 만에 끝났다. 체감 상으로는 약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말 순식간에 마무리 됐다.
'고성능'과 '고성능'의 만남, 시너지 볼까?
최근 AMD는 과거와 분명히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출시가 시작된 라이젠(Ryzen) 시리즈는 경쟁사와 충분히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본격적으로 4개 이상의 코어를 품은 프로세서의 시대를 연 것도 어떻게 보면 라이젠의 역할이 컸다. 심지어 전문가 시장을 위한 초고성능 프로세서 시장에도 스레드리퍼(Threadripper)로 발 빠르게 대처해 주목 받기도 했다.
데스크탑은 물론 모바일 시장에서도 가속처리장치(APU)를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을 공략해 나가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내장 그래픽 프로세서 성능은 이전에도 경쟁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번에는 프로세서 자체 성능도 개선되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AMD의 페라리 후원 계약 연장은 조금 이례적인 느낌을 준다. 제대로 고성능과 기술 발전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협업의 일환으로 AMD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에 기술 포트폴리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실제 차량 개발에 관련한 것인지 전반적인 기업 운영에 대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