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니콘 팝콘 홍콩 출사] 정신 없던 그들과의 여정, 1일차 - http://it.donga.com/19102/
2부: [니콘 팝콘 홍콩 출사] 정신 없던 그들과의 여정, 2일차 - http://it.donga.com/19179/
3부: [니콘 팝콘 홍콩 출사] 정신 없던 그들과의 여정, 3일차 - http://it.donga.com/19219/
지난 2014년 8월 23일, 니콘이 후원하는 연예인 사진 동호회 '팝콘(pop-kon)' 멤버들과 관계자가 작은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 규모는 절대 크지 않았다. 이번 멤버들이 모여서 찍은 사진을 서로 보며 그저 작은 토론회를 열자는 것. 사실 팝콘 멤버들의 촬영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이제 막 DLSR에 입문한 멤버도 있으며, 사진작가에 준하는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멤버도 있다. 그래서일까. 세미나는 이번 출사에 동행한 김홍희 사진작가가 멤버들의 사진을 보며 조언을 해주는 형태로 진행했다.
먼저 멤버 각자에게 사진 5장을 받았다. 세미나 전에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잘 찍은 사진 5장을 가져오라는 명(?)을 받은 멤버들은, 세미나실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고르는데 시간을 보냈다. "작은 상품도 준비했습니다"라는 형 대리의 말에 여유롭게 앉아 있던 멤버들도 다시 사진을 고르기 시작했다. 상품에 눈이 어두운 기자(?)도 참여하길 원했지만, 기회는 박탈당했다(쳇. 야속한 이들 같으니).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우리 이것부터 잠깐 얘기합시다."
각자 사진을 고르던 멤버들이 조용해지자, 김홍희 사진작가가 말을 이었다. 그는 "좋은 사진이란 무엇일까? 사실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을 구분하는 기준 자체가 애매하다.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컬러 사진이 좋은 것일까? 때로는 명암이 뚜렷한 흑백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할 때가 있다"라며, "그래도 기준이 있긴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구도, 밝기 등 기술보다는 카메라의 성능을 더 많이 얘기하곤 한다. 어두운 곳에서 밝게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이다? 글쎄. 그건 카메라를 잘 다루는 기술이지, 좋은 사진을 찍는 기술은 아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그는 "좋은 사진을 고르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사진을 딱 봤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사진'이 좋은 사진일 가능성이 높다. 다리 사진이 있다. 이건 누가 봐도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다. 그럼 그걸로 끝이다. 여고생이 '내가 좋아하는 유태웅 오빠 사진을 찍었어'라며 사진을 보여주면, 그건 그냥 유태웅 사진이다. 이것도 그대로 끝이다. 이처럼 설명이 가능하고, 한마디로 서술할 수 있는 사진은 그리 좋은 사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같은 유태웅이라는 배우를 찍은 사진이지만 '이건 누가 봐도 유태웅이네'라는 사진보다 '어라? 유태웅씨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라던가 '슬픈건가? 어제 안좋은 일이 있었나?'라는 등 뭔가 더 생각하거나 서술할 수 있는 사진이 좀더 좋은 사진이라는 뜻이다. 그는 "보이는 유태웅이 아닌, 보이지 않는 유태웅을 찍어야 좋은 사진이다. 보이지 않는 유태웅의 내면, 보이지 않는 유태웅의 감정… 이런 것들을 찍어야 한다. 사진이라는 것은 어차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실제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라고 덧붙였다.
성은, "먼저 매를 맞겠다. 제 사진 먼저..!"
김홍희 사진작가가 '좋은 사진'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하자, 팝콘 일행은 멘붕에 빠졌다. 서로 "다시 고르겠다"며, 시간을 끌기 시작하자 배우 성은이 나섰다. 아래는 그가 "매도 먼저 맞겠다"라며 내놓은 첫 사진.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제목은 구멍 속 김홍희 사진작가"라고. 김홍희 사진작가는 "이상한 제목이다(멤버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앉아 있으면 그냥 내 사진인데, 구멍 안에 들어가 있으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고, 재미있게 서술할 수 있다. 재미있다. 제목이 살린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홍희가 앉아 있다. 다음에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것을 좀더 보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이었다.
아래는 성은씨가 내놓은 5장의 사진 중 김홍희 사진작가가 선정한 사진이다. "어쩌다 보니까"찍은 성은씨의 말에 김홍희 사진작가는 "상하좌우에 큰 덩어리(빨간색 범선)가 있으면 사진의 안정감이 높아진다. 그리고 배가 앞으로 향한다는 동적인 움직임도 보인다. 뒷 배경의 건물과 레이저, 그리고 옛날 범선도 의미가 있다. 이처럼 사진 한 장에 여러 의미를 담는 것이 좋다. 우리는 이를 '레이어'라고 말한다. 한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사진이란 이런 것"이라며, "잘 찍었다"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성은씨는 니콘 D7100을 사용했다. 그는 홍콩의 야경을 찍으며 P모드를 주로 사용했다고. 기자는 이 말에 뜨끔했다. D810을 M모드로 놓고 수시로 셔터스피드와 조리개값, ISO를 변경하며 찍은 사진보다 오히려 더 나아 보였기 때문. 달리 생각하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평소 찍던대로 찍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얻는 지름길 아닐까. 김홍희 사진작가는 성은씨에게 "욕봤슴니더"라고 전하기도.
채아, "미니어처 모드로 찍었어요"
가수 채아씨의 사진이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예술이다 이건. 이건 모던 아트, 동시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며, "(특유의 사투리로)오늘 와 이라노. 너무 잘하는 것 아이가"라고 감탄했다. 그는 "작가 의도를 담았다. 내가 보고 싶은대로 찍겠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사진으로 보인다. 미니어처 모드를 사용한 것 같은데… 이걸로 끝났다"라고 말했다. 칭찬은 이어졌다. "나중에 이런 미니어처 모드로 찍은 사진만 모아서 전시회를 열면 좋지 않을까. 현대에 이르러서는 완성된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찍었느냐'라는 깊이를 담으면 작품이 된다. 이 사진을 현실 속에서 바라본 비현실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면 재미있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채아씨가 사용한 카메라는 니콘1 J4다. 미니어처 사진은 이 카메라가 지원하는 여러 촬영 기능 중 하나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이거 사인해서 팔면 어떨까. 내가 철학적인 배경을 담아 줄 수도 있다. 나중에 내가 매니저하면 안될까?"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유태웅, "정보를 담은 사진"
사진을 보자마자 일행은 모두 놀랐다. 다같이 다닌 홍콩 일정인데, '이 사진을 어디서 찍었냐'는 것. 사진의 에스컬레이터는 란 콰이 퐁이 있는 소호 거리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다. 길이만 800m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 누가 찍은 사진이냐며 웅성거릴 때, 정종철씨가 한 마디 던졌다. 사진 오른쪽 하단에 찍힌 날짜를 보며, "8월 23일 찍은 사진이라고 잘 알려주네요"라고. 아, 이 사진을 찍은 주인공은 유태웅씨였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만약 어딘가에서 이 장소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나에게 의뢰했다면, 미리 시간을 맞춰서 올 것이다. 그림자가 만들어졌을 때 찍기 위해서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빛과 대비되면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몇 시에 태양이 어디에 위치한다는 것을 체크하고 찍었다면 재미있는 사진이 됐을 것"이라며, "이런 사진의 가치는 정보량이다. 편의점이 있고, 언덕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으며,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는. 이런 사진은 상당히 재미있다. 다시 볼 때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이전에 못 본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유태웅씨는 꼭 사진에 날짜를 넣는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중에 날짜 넣어서 찍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말이다(웃음). 만약에 유태웅씨가 이 날짜를 꼭 넣으면서 여기에 어떤 작품적 당위성을 넣는다면, 뭔가 의미 있지 않을까. 다만, 철학적 당위성이 꼭 담겨 있어야 한다. 여기에 위치 정보도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 사진은 놀이다. 이런 놀이가 있어야 재미도 있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빅토리아 피크 중앙에 있는 각 나라와의 거리를 표시한 바닥>
이장우, "넓은 시야로 사진 전체를 찍는다"
가수 이장우씨가 촬영한 사진이다. 이장우씨가 사용한 카메라는 니콘 Df. 김홍희 사진작가는 "이 사진의 비율은 3:2다. 화면을 크게 활용한 사진이다. 이럴 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캠퍼스를 크게 사용한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시야가 넓다는 뜻이다. 축구를 예로 들어볼까. 펠레처럼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멀리서 공을 차면 떨어질 곳으로 미리 달려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는 이럴 때 시야가 넓다고 말한다. 이장우씨는 상당히 시야가 넓은 사람"이라며, "역광이다. 넓은 시야와 역광을 통해 사진을 전체적으로 만든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흔히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그림자의 예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빛의 위치'를 보고 사진을 찍는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역광을 피한다. 하지만, 그림자를 보고 찍으면 완전히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위 사진도 뽑았다. 그는 "아까 본 사진과 비슷하다. 한가지 다른 점은 오른쪽 위 구름이다. 구름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운이다. 하늘에 구름이 없어야 하는데 있다든지, 있으면 좋겠는데 없다든지. 운때가 맞아야 한다"라며, "구름을 빼고 보면 정말 동적인 사진이다. 세세한 것들이 잘 표현됐다. 후보정을 통해 사진을 없애보면 상당히 역동적인 사진이 될 것이다. 약간 비틀어진 것도 똑바로 세우면 더 좋은 사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부연설명을 더했다. "우리는 보통 사진을 말하면서, '그대로 찍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사진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찍는다'는 뜻의 일본말이다. 수박을 찍으면 수박이, 책상을 찍으면 책상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포토그래피라고 말한다. 포토그래피는 '빛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은 다르다"라며, "낭만주의라는 말도 일본어다. 원래는 '로마주의 즉, 로마로 돌아가는 주의'라는 뜻이다. 로마 시대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다. 르네상스 시대가 신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였다. 이렇듯 단어가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곤 한다"라고 덧붙였다.
요지는 간단하다. 사진을 찍고 난 뒤,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정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을 전달할 것인가, 예술을 표현할 것인가라는 주제에 따라 방향을 다르게 정하라는 의미. 기자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현장을 찍지만, 예술을 표현한다면 하늘을 빨갛게 또는 노랗게 표현해도 괜찮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은주,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찍는다"
같은 미니어처 사진이 등장했다. 배우 최은주씨의 사진이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역시 재미있는 사진이다. 이런 건 누가 먼저 발표하는가의 차이다(웃음). 은주씨가 채아씨보다 먼저 발표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라며, "아까도 말했지만, 일반 사람들은 보이는대로 찍는다. 하지만, 우리는 보고 싶은대로 찍는다. 남이 이러쿵저러쿵 왈가불가할 수 없도록 내가 보는 방식대로 찍는다. 주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홍콩은 사람이 만든 놀이동산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위 사진은 옆으로 누워 있는 상태다. 사진을 넘기다가 우연히 90도 틀어져서 표현된 것. 하지만 김홍희 사진작가는 사진을 그대로 두라며 "이거, 이거… 진짜 재밌다. 세워 보자. 방금 느껴졌던 그런 기분이 사라진다. 왜 이럴까. 매일, 매번 보던 장면을 낯설게 보면 이런 느낌을 받는다. 전문용어로 '낯설게 보기'라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 익숙한 것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라며, "어떻게 하면 낯설게 찍을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자. 그러면 색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수린, "다양한 각도로 세밀하게 표현하다"
마지막, 한수린씨의 사진이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이거 되게 재미있는 사진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를 향해서 똑바로 찍는다. 이 사진을 더 숙여서 찍었으면 어땠을까. 더 재미있을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비디오카메라 그러니까 캠코더를 쥐어주면, 이상한 곳까지 들어가면서 촬영한다. 그런데, 카메라만 주면 반듯하게 찍는다. 이걸 틀어야 한다. 숙이고, 들고, 틀어서 찍으면 완전히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잘 안된다. 모르면 죽을 때까지 똑바로 찍는다"라고 말했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이것도 참 넓게 찍은 사진이다. 역광인 상황에서 어렵게 찍었는데, 빛을 중심으로 잘 표현된 사진이다.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모르겠다. (해저터널 입구라는 대답에)오, 뭔가 의미 있어 보인다"라며, "구름이 멋지다. 잘 표현됐다. 바다에 정박한 배와 바다 건너 도시의 모습, 역광, 동적인 구름, 도로 위의 자동차들. 재미있다. 홍콩… 참 도시가 예쁘다"라고 말했다.
홍콩… 그리고 사진
이렇게 작은 세미나가 끝난 뒤, 니콘 형 대리가 "1, 2, 3등을 뽑아 달라"고 말했다.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김홍희 사진작가는 "이 안에서 무슨 순위가 필요한가. 남자들은 빼고 여자들에게 상품을 전달하자. 나이 많은 은주씨가 양보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한수린씨, 채아씨, 성은씨가 상품을 받았다. 맞다. 무슨 순위가 필요한가. 팝콘 멤버들은 홍콩에 온 뒤에 누구보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한 손에는 잊지 않고 카메라를 들고 있던 그들이다. 김홍희 사진작가는 '이야기를 담은 사진'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사진을 찍는 기법, 카메라의 성능을 끌어내는 지식 등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강조한 것. 사진이 뭐 별건가. 친구, 연인, 아이의 사진을 마음대로 찍는 것. 그게 바로 사진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