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전 이맘때였다. 부산에 위치한 서명초등학교와 분포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활용해 수업하고 있던 모습을 전달했던 일이. 당시 아이들이 아이패드로 PT를 만들고, TV에 연결해 발표 등을 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최근, 전라남도와 광주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같은 소식이 들렸다. 이제는 한단계 더 발전했단다. 수업 전에 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동영상을 아이들이 미리 보며 공부하고, 수업 내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서로 발표한다고. 또한, 아이들이 발표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서로 협력해 교실 안에서 밖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단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직접 방문했다.
* "아이들의 학습 흥미를 일깨우다" – 부산 서명초등학교: http://it.donga.com/13630/
* "책으로 지식을 구하는 시대는 지났다" – 부산 분포초등학교: http://it.donga.com/13722/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에 위치한 불갑초등학교는 전교생이 34명에 불과한 작은 초등학교다. 하지만, 1929년 11월 2일 불갑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해 올해 초 2월 13일 83회 졸업생을 배출했을 정도로 역사는 깊다.
불갑초등학교를 거쳐간 총 졸업생은 6,257명. 올해 초 노택현 교장 선생님도 새로 부임했다. 어느새 30대 교장 선생님. 이른 아침 학교 교정에 들어서자, 연락했던 5학년 담임 박영민 선생님이 반겼다.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다"라며, "우리 아이들이 기자님들 오신다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만큼 순수한 아이들이다. 오늘 수업 잘 보셨으면 좋겠다"라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아이들의 수업을 바꿨다
불갑초등학교 5학년 학생은 강혜민, 김태찬, 배은지, 서우솔, 오은찬, 정민서, 최종민, 한규성 어린이. 총 8명이다. 박 선생님은 "전교생 34명 중 가장 많다"라고 귀뜸했다. 수업 시작 전 아이들은 3명씩 2조, 2명이 1조를 이뤄 총 3조로 책상을 모았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 박 선생님이 칠판으로 걸어가 '분수의 덧셈과 뺄셈'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건넨 한마디는 "아이튠즈유 열어봐"였다.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모여서 교과서가 아닌 아이패드 미니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패드 미니 화면에 오늘 수업 내용이 나타났다. 오늘 배울 수업 내용을 선생님이 미리 아이튠즈유에 등록해 놓은 것. 이미 아이들은 해당 내용을 전날 다 보고 왔다. 아이튠즈유 안에는 선생님이 촬영해 놓은 동영상도 담겨 있었다. 잠시 후, 아이들의 시선은 아이패드 미니에서 교과서로 향했다. 이제 수학 문제를 풀 차례.
교과서의 수학 문제를 풀던 아이들은 왁자지껄했다. 혼자서 책과 씨름하며 문제를 풀지 않는다. 서로 토론하고, 모르는 부분은 옆 친구에서 묻고, 옆 친구는 하나씩 설명한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어떤 원리로 풀리는 것인지 미리 집에서 보고 왔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서로 머리를 모아 하나씩 해답을 찾아 나갔다.
박영민 선생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나, 질문하는 것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옆 친구에게 "이건 어떻게 풀어야 해?"라고 묻자, "28 안에 3이 몇 개 들어가는지 생각해봐"라는 말이 들려왔고, "23에서 16을 빼 봐", "7.7 맞지?"라는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아이들은 끊임 없이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자의 나이는 36살이다.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시절, 기자는 뽀얀 분필 가루로 가득한 초록색 칠판을 보며 선생님께서 적어 주시는 빼곡한 글씨를 받아 적기 바빴다. 옆 친구와 말하기 시작하면, 으레 선생님은 "거기 떠드는 놈 누구냐?"라며 나무랐다. 함께 말하며, 모르는 부분을 서로 공유하는, 이 같은 모습은 기자에게는 문화 충격에 가까웠다. 함께 방문한 타 매체의 기자는 "어안이 벙벙하다"라며, "말로만 들었었는데. 직접 보니 정말 다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한참 문제를 풀던 한 여자 아이가 일어났다. 옆의 남자 아이에게 다가가 "벌써 고치는 것 아니야. 조금만 더 생각해봐"라고 말했고, 남자 아이는 조금 고민에 빠졌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 여자 아이가 다시 "삼일은?"이라고 물었고, 남자 아이는 "삼일? 삼일은 삼이지"라고 말했다. 여자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응. 맞아. 그렇게 풀면 돼." 박 선생님이 기자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이게 불갑초등학교 5학년 교실의 일상입니다"라고.
약 10분쯤 지났을까. "다 풀었다!"라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이어 박 선생님이 "끝났으면 옆으로 돌려서 채점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옆으로 교과서를 돌리기 시작했고, 각자 채점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 박 선생님은 돌아다니며 아직 문제를 다 풀지 못한 조 아이들을 가르쳤다.
"다 맞았다. 선생님, 다 맞았어요."
"Yeah~ Yeah!"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수업을 시작한지 약 30분이 지난 시점에 아이들의 목소리는 점차 커졌다. 박 선생님이 수업 초반 말했던 "평소처럼 해. 얘들아. 왜 이렇게 조용해"라고 했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역할까지 정하며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의 역할도 거기까지였다. "너희들끼리 말해 봐. 대화하면서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지 고민해 봐"라며 아이들이 직접 수업에 참가하고, 주도할 수 있도록 조언할 뿐이다.
직접 촬영하며,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
한차례 문제 풀기를 끝낸 아이들에게 박 선생님이 미션을 줬다. 바로 지금 풀어야 하는 미션. '분수의 덧셈을 설명하자'라는 주제로 아이들이 설명해 보자고 제안한 것. "와"하며 웃던 아이들이 대화를 시작하며, 발표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 숙제는 전날 오늘 수업에 진행할 것이라고 미리 알린 내용이다.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해서 박 선생님이 아이튠즈유에 올려놨고, 아이들이 오늘 수업을 진행하면서 어떤 상황을 선택할지 스스로 고민한 것. 선생님은 미리 '제안'을 했고,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다.
한동안 떠들썩 대화를 나누던 아이들이 아이들이 일어나 교실문을 열고 나갔다. 서로 더 편한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다. 두 남자 아이는 보건실로, 두 명의 여자 아이가 속한 조는 독서실로 흩어졌다.
조별로 문제를 풀기 시작할 때처럼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교내를 가득 채웠다. 분수의 개념을 상황극으로 꾸미기 위해 시나리오를 짜던 아이들의 대화가 재미있다. "이건 너무 안 웃겨", "맞아"라며,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동영상 촬영 속에 재미 요소를 넣기 시작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고, 곧 아이들은 교실 뒤에 모여서 촬영을 시작했다. 박 선생님은 촬영감독으로 잠시 직업을 바꿨으며, 아이들은 각 상황극 내 등장인물로 변모했다.
교실 밖으로 나가 토론하던 아이들이 삼삼오오 교실로 돌아왔다. 박 선생님이 "너희들이 만든 동영상은 SNS에 올려서 투표를 받을 거야. 오늘 수업 전에 만든 황사 설명 동영상은 '미래교실네트워크'에 올릴거니까 확인하고"라며, "다른 학교 학생들도 너희들이 만든 동영상을 보면서 공부한데. 이제 화장실 갔다 오고, 정리하자"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네!"라며 밝게 대답했다.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거꾸로 교실
한바탕 수업을 참관하고 난 뒤, 박 선생님과 따로 자리를 가졌다. 그는 거꾸로 교실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아이들의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해 많은 것을 고민했다. 노택현 교장 선생님께서도 뭔가 다른 것을 원하셨고.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거꾸로 교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미리 영상을 제공해 교실이 아닌 집에서 미리 공부하고, 교실에서는 이미 아이들이 공부하고 돌아온 내용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는 방식"이라며, "초반에는 잘 안됐다. 문제는 간단했다. 그저 수업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터놓고 얘기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많이 토론했다. 그렇게 직접 아이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수업을 바꾸자 아이들의 생각이 바뀌었고, 수업에 대한 철학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선생님들은 모두 나름 교육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다. 각각의 아이들에게 맞도록 맞는 진단을 내려야 맞다.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기존 방식으로는 수업 시간 안에 교과서 안의 내용을 이해시키고, 설명하는데 바쁘다. 그런데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수업 시간밖에 없다. 어떻게든 이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라며, "우리 태찬이 같은 경우는 가로셈하는 부분에 조금 약하다. 이전에는 그걸 알면서도 시간에 쫓겨 잘 가르치기 어려웠는데, 수업 방식을 지금처럼 바꾸고 난 뒤에는 태찬이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설명 시간을 줄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더 많이 신경을 쓸 수 있더라"라고 덧붙였다.
혹, 아이들이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PC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는 일부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아이패드가 아니다. 그냥 연필과 같은 도구다. 그게 끝이다. 그렇게 사용하면 맞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라며, "얼마 전, 황사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한 바 있다. 아이들이 직접 조사하면서 황사보다 미세먼지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아이들이 직접 마스크를 구매해 어른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가졌다. 그 때 아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어른들만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그 때 은찬이는 이런 말을 했다. '왜 아이가 아이인지 아세요? 아이디어를 많이 내서 아이인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웠다"라며 웃었다.
그는 "지금 아이들이 (방금 수업을 통해)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 수업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서로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깨우친다"라며, 이 같은 수업 방식이 성적에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수업 방식이 바뀌면서 성적으로만 연결되는 인식이 아쉽다. 아이들이 자기 중점적으로 바뀐, 이 상황에 좀더 집중했으면 좋겠는데"라며, "결론부터 말하면 지난 4년 동안 우리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걱정하시는 학부모님들을 위해 아이들이 만든 동영상을 모바일메신저로 공유한다. 학부모님들도 모두 참여하고 계신 단체방이다. 요즘은 학부모님들도 좋아 하신다"라고 설명했다.
선생님과의 대화가 끝난 뒤, 아이들과 잠시 시간을 가졌다. 아래에 아이들이 대답한 말을 그대로 적는다.
"지금 수업이 어렵냐구요? 아니요.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선생님이 올려 주시는 동영상은 집에서 핸드폰으로도 봐요. TV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 게임이요? 별로 재미도 없던데요."
"미래교실네트워크에 동영상을 올렸더니, 어른들이 '기특하다'고 댓글을 달아 주셨어요. 우리 선생님 칭찬도 많이 해주시구요. 너무 고맙습니다."
"황사 수업 때 마스크를 마을 주민과 모르는 분들에게 나눠 드렸어요. 잘 모르는 집에도 직접 방문해서 드렸구요. 아, 공사 현장에도. 어른들이 고맙다고 잘 쓰겠다고 하셨어요. 뿌듯했고, 너무 좋았어요."
"선생님이 수업 내용을 알려 주시는 것도 좋지만, 친구가 옆에서 알려 주는 것이 너무 좋아요."
"우리는 발표가 없어요. 교실에서 하는 대화가 모두 발표인걸요."
마지막, 6학년으로 올라간 뒤 지금의 수업 방식이 아닌 기존의 수업 방식으로 진행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불갑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바꾸면 되죠!"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